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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고범수, 하루살이

by FROM_MJ 2021. 11. 5.

나는 방금 막 태어난 하루살이다.


나는 태어나 부모나 형제를 만나보지도 목소리를 들어보지도 못 했다. 하지만 나는 딱히 부모에 대한 애정이나 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는 않았고, 이런 마음에 대한 슬픔을 느끼지도 않았다. 마치 나는 감정이 없는 로봇 같았다. 내 주위에는 나와 비슷하게 생긴 여러 마리의 하루살이들이 방금 막 태어난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 나는 어둠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유충 때부터 기대하던 찬란한 풀밭이나 도심 속 건물, 시골의 한적한 주택들이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그때 하나씩 하나씩 벌레들이 하늘을 날아오르더니 한 곳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조심히 날아올라 벌레들이 가는 방향을 바라보았고, 어느새 나는 그 빛을 향해 벌레들과 함께 날아가고 있었다. 그 빛은 가로등 전등에서 나는 불빛이었고 가로등에 도달했을 때 나는 그곳이 개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곳은 불빛을 향해 박치기를 하는 날벌레들과 거미줄에 걸려 죽기를 기다리는 벌레들, 박치기 끝에 죽어버린 벌레들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한쪽 벽에선 종 보존을 위해 힘쓰는 벌레들도 보였다. 그 중 나는 죽음을 기다리거나 죽어가는 벌레는 아니었다. 나 또한 가로등을 향해 박치기를 하였지만 몇 번 박치기를 하고 나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린 나는 그곳을 빠져나와 주변을 날아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하루를 보내던 중 나는 신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와 같은 하루살이들은 보통 2~3일 정도를 산다는 것과 교미 후 알을 낳고 죽는다는 것, 그리고 먹이를 먹지 못한다는 것... 처음 두 가지는 다른 벌레를 통해 들어 알 수 있었지만 먹이를 먹지 못한다는 것은 돌아다니면서 알 수 있었다. 나는 입이 퇴화한 듯 보였고 이를 통해 나는 내가 먹이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짧게 사는 인생 보고 싶은 거 실컷 보다가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더 돌아보기로 결정했다.


나는 내가 태어난 습지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호수의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다. 이 호수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다는 점과 새들은 우리 같은 벌레들을 많이 먹는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성충이 된 지 3일쯤 되었을 때 밤이었다. 달이 비치는 호수를 돌면서 혼자 놀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암컷 하루살이 한 마리가 날아와 잎사귀에 앉았고 나는 지금이 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며 그 하루살이를 향해 다가가 말을 꺼냈다.


나는 그 하루살이에게 그동안의 있었던 일과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해 말을 하고 대화하며 점점 그 하루살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이 밤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녀의 허락과 함께 나와 그녀는 삶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며 황홀한 밤을 보내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걸어갔다.

 

 

 

 

* 이 글은 고범수 학생의 허락을 받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