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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이어진 시

by FROM_MJ 2021. 11. 6.

1
밤이 길다 새벽이 짧다
집으로 오는 길 켜지지 않는 가로등에 괜히 겁이 나는 그런 날
어둠에 적응해버린 나는 켜질 가로등에 눈부셔하겠지
밤이 길다 끝이 보이질 않는다
새벽이 온다, 이때쯤 나는 숨을 내쉰다
어둠 속 길을 헤매던 어제의 내 모습을 기억할 수 있기를
새벽은 짧다 들이쉰 숨 속엔
또다른 별들의 눈물이 내 안을 비추겠지
오늘도 빌어본다 지금 이대로 멈춰달라고
하늘 속 별들에게 손을 내민다
새벽이 짧다
이젠 밤의 풍경이 나를 채운다
눈부신 그 아침에 난 겁부터 먹는다
시간이 흐른다
예민한 나의 시간이 지났으니 이젠 정겨운 아픔에 환영을 고할 차례다

- '이제는 정겨운 아픔조차도 환영이야'라는 노래 가사를 듣고 써본 시



2
너와 나의 거리에 흩어진 유리조각들을
깨끗한 라벨이 붙은 투병한 병 속에 담아 보낼게
네가 복잡한 감정 속 공허함에 몸부림 치지 않기를
네가 가끔 어떤 사람이었는지 떠올리고 어떤 생각하고 있는지
상상한 내 모습들을 네가 바라볼 수 있기를
그리고 네가 없는 시간들 속 나의 눈물을 마셨던 베개 안 솜들을
넣어둘게
내가 밤새 조용했던 이유를 너도 조금은 알아주길 바라는 내 심술이야
새벽녘의 바람을 타고 날아간 이 편지가 너의 눈시울을 붉힐 수 있길 바래
이제 차가운 망각들 속에 손을 적셔
이 편지는 조금 시간이 흐른 어느날,
널 잊었을 그 언저리 쯤 도착할 거야

- 장이지 시인의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이란 시에서 편지를 받은 사람 입장에서 써봤습니다.


3
손목을 긋다 만 흔적
주저흔이라 한댔다
죽고 싶은데 죽지 못하게 말리는 걸
내 자신이라 깨달았을 땐
그것마저 서러워 꺼이꺼이 숨을 삼킨다
더러운 본능을 저주하고 나를 갉아먹고서야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꿈틀대는 굼벵이는 더 이상 무서울 게 없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으셈



4
나도 모르게 행복이 다가올 때쯤
내가 흘린 눈물의 무게가 가벼워지는걸 느낀다
터널을 기어다니고 기대를 져버리는게
익숙해지지 않는 아픔으로 다가온다는게
잊고 싶지 않을만큼 아팠기에
나는 다시 행복을 밀어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품어버린 만족감을
과연 언제까지고 품을 수 있는지
흘린 눈물의 무게를 내팽겨칠 수 있는지
다시 혼자서 아파해야하는지
난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다



5
이름 모를 파랑

새벽녘의 바람이 불러오고
시계초침이 방향을 잃을 때
베개를 끌어안아 닻을 올리며
이야기의 한의 이름으로 풀어본다
두 손이 잃어버린 노를 헤메고 있으면
별자리 지도는 길 없는 항로들을 보여줬고
뼈대 없는 솔직함에 갈메기의
하염없이 기대하는 울음소리들 사이로
부서지는 빗방울들이 춤을 추면
내일없는 뱃사공의 파랑이 그려진다



*이 글은 이어진 학생의 허락을 받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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